<공작>의 시강


전자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생긴 버릇이 있다. 서점에 가서 읽은 책의 실물을 보고 만져보는 일이다. 크기와 두께는 어떤지, 얼마나 무거운지, 종이질은 어떤지, 인쇄된 본문의 폰트와 크기는 어떤지, 띠지는 있는지, 여러가지를 확인해야 그 책을 읽은 기분이 든다. 이 루틴을 하지 않으면 뭔가 기분이 찜찜하다. 근래엔 종이채에서 확인해보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됐다. 전자책으로는 알 수 없다. 그건 몇쇄나 찍었는지에 대해서인데 종이책에만 나온다. 이 숫자를 보고 작가는 돈을 많이 벌었겠군, 아니면 밥은 먹고 살아야할 텐테.. 하는 괜한 오지랖을 떤다. 오늘 본 책은 x쇄의 x가 두자릿수가 넘는 큰 수였다. 사실 많이 부러웠다. 나도 책 한 권 내고 싶다. 교보문고 강남점에 가면 풀바셋 커피를 먹고 오는데 오늘은 참고 그냥 왔다. 아래 사진의 두 책은 읽고 싶어서 찍어왔고,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은 앞부분만 읽다 왔다. 나는 서점에서 추리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어야 하거나 다 못읽으면 사들고 와야하기 때문이다.

>

>

>

단편 소설, 이건 다 뚜이 때문이야


개학 후 두번째 일요일이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온 재석은 거실 쇼파에 널부러졌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양팔을 휘휘 저어 TV 리모콘을 수색했다. 몸의 직감은 정확했다. 몇초 걸리지 않아 묵직한 것이 손 안에 감겼다. TV 리모콘이었다. 전원을 켜고 본능적으로 채널을 돌리다 멈췄다. 런닝맨 본방이 방송되고 있었다. 재석은 원래 이 시간에 집에 오면 늘 1박 2일을 보곤 했다. 오늘 채널을 돌리다 런닝맨에서 멈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게스트로 출연한 에이핑크 멤버 나은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그순간 초단위로 돌아가던 TV의 채널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나은의 덕후인 재석에게 내린 우연의 선물이었다. 재석은 망연히 빠져들었다. 다른 멤버들에게 쫒기고 쫒으며 숨을 헐떡이고 깔깔대는 나은을 보는 재석의 마음은 충만한 덕심으로 은혜로웠다.

대게 이런 일상의 은혜로움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언제나 이를 시기한 악마가 훼방을 놓는다. 그날의 훼방꾼은 명수였다. 명수는 같은 과 동기다. 재석과 명수는 신입생 오티 때 처음 만나 단짝이 됐다. 정확히 말하면 단짝은 아니다. 명수에게 재석은 없어선 안 될 친구이고 재석에게 명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친구다. 말하자면 암묵적 갑을 관계를 맺고 있었다. 명수는 재석에게 뭔가를 얻어야 할 때 카톡을 보냈다.

과제는 다 했냐?

명수가 보낸 이 한줄의 카톡은 평온했던 일요일 밤을 깨뜨렸다. 재석은 답톡을 즉각 보냈다.

무슨 과제??

재석이 보낸 톡 앞에 붙어있던 숫자 1은 즉각 0으로 바뀌었다. 재석 역시 폰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명수가 다시 답톡을 단답형으로 보냈다.

자료구조 수업

큰일났다. 재석은 그제서야 생각났다. 오늘밤 자정까지 조교 이메일로 제출해야 할 과제를 잊고 있었다.

아니.

재석이 톡을 보내자 명수는 바로 반응했다.

헉. 너답지 않게 뭐냐? 다 하면 톡으로 보내라.

늘 이런 식이다. 명수는 재석의 과제를 베껴서 낸다. 이번엔 명수가 아니었다면 과제를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재석은 처음으로 명수의 존재를 감사했다.

재석은 착실한 대학생이다. 과제를 잊어 빼먹거나 시험 범위를 착각하거나 해서 망친 과목이 없었다. 과제가 나오면 미루지 않고 재깍 해치우는데 오늘 같은날은 처음이라 재석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재석은 몰랐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계속 읽기

단편 소설, 의자는 걸을 수 있을까


나무로 만든 한 의자가 있었다. 등받이가 있는 작은 의자였다. 의자가 맨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초등학교 1학년 교실이었다. 교실엔 그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그는 운좋게 창가 맨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창가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놓여진 의자와 책상 친구들은 창가를 차지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한날 한시에 한 교실로 모여 살게 된 모든 가구들은 친구였다.

학교의 주변엔 높은 빌딩이 아직 들어서지 않았고 적당히 비스듬하게 동향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5교시가 끝날 무렵까지 햇볕이 들어왔다. 그는 새해 학기초 1교시가 시작되기 전 30분의 시간을 좋아했다. 햇볕이 교실 끝에까지 닿는 그 시간은 하루 중 교실이 가장 밝았고 다른 모든 친구들이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햇볕이 모두를 공평하게 쓰다듬어 주고 가는 그 짧은 시간에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로 들어온다. 이 시간은 늘 시끌벅쩍하다. 아이들의 대화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 신발이 마루바닥에 닿았다 떨어졌다 하거나 또는 질질 끌 때의 소리, 온갖 종류의 소리로 교실을 채운다. 이 시간과 짝을 이루는 시간은 마지막 교시가 끝날 무렵이다. 모든 소리가 비슷하거나 같지만 확연하게 다른 건 아이들의 목소리 톤이다. 아이들은 등교보다 하교 시간을 더 좋아한다. 이 사실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자연 법칙이랄까? 그런데 얄궂게도 교실 안 친구들은 아이들과 정반대다. 마지막 교시가 끝날 무렵이 하루 중 우울하다. 그 시간 이후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교실 밖에는 아직 고학년 아이들이 수업중이고 창밖에선 운동장에서 놀거나 체육 수업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니까. 하지만 그 소리도 점점 잦아들고 마침내 밤이 오면 교실은 적막으로 덮힌다. 교실의 하루 일과는 한 친구만 빼면 듣기로 시작해 듣기로 끝난다.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말하는 능력을 가진 그 친구는 우리 중에 맨 마지막으로 교실로 왔다. 가장 나이 어린 막내를 교실 친구들은 친구로 대했다. 그 친구는 텔레비전이었다. 아주 가끔. 그러니까 한 학기에 한 두 번 정도 될까? 텔레비전은 가끔 아무말이나 떠들고 몸에서 색색 빛들이 나와 아이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텔레비전은 잘난 체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검은 색의 몸 안엔 세상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 텔레비전은 교실에 온 첫날 친구에게 자기를 간단히 소게했다. 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알 수 있어. 그러니 오늘부터 나를 반장으로 대해줘. 교실 안 모두는 아무말이 없었다. 그가 그들을 대변해 말했다. 정말?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니? 그리고 우리에겐 반장같은 건 필요없어. 반장없이도 지금까지 잘 지내왔는 걸. 텔레비전을 제외한 모두가 수근거리며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텔레비전이 말했다. 좋아. 그럼. 너희를 믿게 해준다면 나를 반장으로 인정해주는 거다. 며칠 후 텔레비전은 자기 말을 증명해 보였다. 담임 선생님이 텔레비전의 몸에 있는 한 부분에 손을 대자 텔레비전은 자기 몸의 검은 색 평면에 알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주었다. 그날 이후로 교실의 모두는 텔레비전을 반장으로 불렀다. 반장이라고 해봐야 권위나 특혜같은 건 없었다. 단지 반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준다는 것이 특혜라면 특혜였다.

교실 안의 권력 구도 형성은 교실을 새로운 세계로 바꿔 놓았다. 그와 함께 다른 의자들과 책상, 교실안 모든 친구들보다 텔레비전은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었다. 텔레비전은 친구들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해 주었다. 텔레비전이 나타나기 전까지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똑똑한 친구는 칠판이었다. 하지만 칠판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았다. 이용하지 않았다는 말은 옳지 않다. 칠판은 몰랐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로 칠판은 권력의 맛을 들였고 권력 서열 2인자로 올라섰다. 그와 친구들이 칠판을 부반장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부반장. 나 할 말이 있어. 분필 집단이 칠판의 권력에 빈기를 들었다. 분필1은 자기가 그들의 집단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서로 살을 맞대고 평생을 보내는 분필 집단은 유대감이 깊고 결속력이 강하다. 항상 소근소근 자기들끼리만 놀던 분필들이라 칠판은 놀랐고 교실의 모든 친구들이 관심을 가졌다. 웅성거림 속에서 거구의 칠판이 말했다. 너네들이 웬일이야?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교실에서 가장 몸집이 큰 칠판의 목소리는 작은 소리에도 교실 안을 순식간에 채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친구들 앞에 나선 분필1은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려는 듯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작은 소리가 교실 끝에서 끝까지 닿아 매아리로 돌아왔다. 교실은 고요했다. 반장은 빼고 부반장과 여기 있는 너희들은 모두 우리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너희들 때문에 여기 있을 수 있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 바보들아. 칠판은 비웃으며 분필 집단을 능욕했다. 책상과 의자, 다른 친구들이 칠판에게 동조하며 야유를 퍼부었고 텔레비전은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태를 관망했다. 부반장! 그리고 너희들은 몰라. 내가 없으면 수업이 안 돼. 선생님은 칠판에 글을 못 쓰고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배우지 못하지. 그러니까 칠판보다 우리가 더 중요하다고. 부반장은 우리가 해야 해. 분필1의 단호한 주장에 교실은 웅성거렸다. 다시 분필1이 말을 이었다. 그보다 너희들이 알아야 할 건 따로 있어. 그건 우리가 많은 희생을 한다는 거야. 매일 우리는 몸을 깍는 고통을 견디며 아이들의 배움에 공헌해. 그 대가는 수명 단축이야. 거의 매일 한 명씩 죽음을 치른다구. 우리에게 수업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야. 분필1의 연설이 끝나자 교실의 분위기는 연설을 시작할 때와 정반대로 전환됐다. 의자와 책상들은 분필을 편들었고 판세는 분필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래. 맞아. 지금부터 부반장은 분필 너네들이 해. 이번 기회로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고 싶었던 텔레비전은 분필이 우세한 판세에 쐐기를 박으려 했다. 하지만 칠판은 고분고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리 없었다. 싫어. 부반장은 계속 내가 할거야. 나도 수업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만약 내가 분필의 가루를 몸에 묻히지 않는다면 선생님은 글을 쓸 수 없고 그려면 아이들이 배울 수 없게 돼. 분필보다 내가 더 중요해. 그리고 난 아는 것도 분필보다 많아. 왠지 알아? 내 몸에 흔적을 남기며 분필들이 써내려간 단어들과 그것들로 만든 문장들, 그리고 숫자들과 그것들의 계산법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 그런데 분필 너네들은 아무것도 모르지. 그저 자기 몸을 가루로 만들며 죽어갈 뿐이야. 너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나의 소모품에 불과하지. 분필1도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수가 있지. 두고 보라고. 분필들은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단했다. 그것이 무엇인진 분필들만 알았다. 그러나 그 파급력은 그들도 헤아리지 못했다. 날이 밝고 수업이 시작되자 분필들의 모의는 실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일종의 파업이었다. 분필들은 제 몸을 깍지 않았다. 희생을 거부했고 단명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칠판에 글씨가 써지지 않는 걸 선생님은 처음엔 대소롭지 않게 넘겼다. 꺼내 들은 분필을 다시 분필통에 넣고 다른 분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기들의 힘을 보여준 분필들은 환호를 지르며 의시댔다. 봤지? 이게 우리 힘이라고 우리의 희생이 없으면 교실이 안 돌아가고 너네들은 다 쓸모없어지는 거야. 분필1의 말은 선생님과 아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교실 친구들과 사름들은 서로 다른 주파수 대역으로 대화한다. 그러나 교실 친구들은 사람들의 주파수 대역을 알고 있어 들을 수 있다. 얘들아. 오늘은 분필들이 파업을 하는 날인가 봐.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누가 말해 볼래? 분필통의 모든 분필들이 안 써지는 걸 확인한 선생님은 이 상황을 교육으로 활용했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선생님. 정말 안 써지는지 저도 한번 써보고 싶어요.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했고 아이는 앞으로 나가 분필을 하나씩 거내 들어 칠판을 그었다. 세번째 분필 분필3이 나갈 때였다. 난 아이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어. 글씨를 써야겠어. 다른 분필들은 분필3을 배신자라며 힐난했다. 아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그날 분필3은 제 몸을 다해 한줌의 가루로 사라졌다. 제 본분을 거역한 나머지 분필들은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처참히 버려졌다. 다른 한 아이가 불량품은 버려져야 한다고 말했고 선생님은 그 아이를 칭찬하며 분필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즐거움으로 치하했다. 공중을 날아 컴컴한 쓰레기통에 쳐박힌 분필들은 산산히 부서졌다. 그들은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았다. 의자와 책상들 중에 하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 후 칠판과 텔레비전을 뺀 모두가 따라 울었다. 교실엔 분필들의 신음 소리와 울음 소리, 아이들의 수다 소리가 공존했다.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