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쓴 글 때문에 어릴 때 이야기를 더 하고싶다. 대학에 입학한 20살 때까지 보육원이 딸린 재활(병)원에서 살았다. 보육원은 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설립해 처음엔 전쟁고아를 거둬 보호한 고아원으로 시작했다. 내가 살았던 기간에도 선교사님이 계셨다. 내 기억엔 두 분이 남아계신다. 미국에서 오신 제리 복 선생님. 이 분은 물리치료 선생님이셨다. 다른 한 분은 네덜란드에서 오신 안느 선생님. 이 분은 성경을 가르쳐주셨다. 우리말이 서툴러 성경공부 시간마다 통역사 선생님을 대동하셨다. 별다른 놀이가 없어서였는지 이 시간을 늘 기다렸다. 선진국에서 오신 선교사님들 덕에 당시의 최신문물을 볼 기회가 많았다. 필름 슬라이드나, 타자기, 청진기처럼 생긴 이어폰 같은 것들이 신기했다. 그중에 게임기도 있었다. 게임기는 나보다 연배가 높은 형들이 사는 방에 있었다. TV에 연결해 플레이하는 게임기였는데 겔러그와 그 외 여러 게임이 가능했다. 나는 조작이 어려워 형들과 다른 친구들의 플레이만 지켜보곤 했다. 그것으로도 난 재미있었다. 어느 날 어느(이름을 알지만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형이 컴퓨터로 뭔가를 하는 걸 보게됐다. 생애 첨 본 컴퓨터였다. 뭘 하는지 몰라도 까만 바탕에 놓인 초록색 글자들이 모니터 화면에서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있었다. 형이 넘 멋져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살던 방에도 컴퓨터 한 대가 생겼다. 당시 나는 내 또래의 남자 아이들 7~8과 한 방을 썼다. 컴퓨터는 어느 후원자 분이 기부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컴퓨터는 애플사의 16Bit 일체형 PC로 상당한 고가였다. 그땐 그것이 그렇게 고가의 전자기기인지 나와 모든 아이들이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시간을 나눠 PC를 썼다. 일종의 Time sharing 이라고 해야 하나. 30분 또는 1시간씩 돌아가며 컴퓨터를 썼다. 쓴다는 건 기껏해야 게임을 하는 거였다. 게임은 테트리스, 타잔 말곤 기억 안 난다. 게임이 지겨워지면 basic 언어로 놀았다. 잡지에 싣린 코드를 그대로 짜보고 돌려보는 놀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빠져들었다. 그 후로 내 꿈은 줄곧 프로그래머로 정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로 꿈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아마도 윈도우95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이런 os나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MS사의 창립자이자 CEO였던 빌 게이츠의 저서 <생각의 속도>가 내가 3학년 즈음 출간되었는데 사서 읽었었다. 멀리 떨어진 대형 서점에 갈 수 없어서 아는 선배(물리교육과 여선배)에게 부탁해 대리 구매했다. 그 댓가로 선배가 수강하던 전산물리 과제를 도와줬다. 이 선배님은 잘 살고 계시겠지.. 아, 선후 관계가 바뀐 것 같다. 내가 과제를 도와준 사실이 먼저고 책을 대신 사준 게 나중이다.
사회생활을 해갈수록 이 꿈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내 실력이 모자라였을 수도, 열정이 모자라였을 수도..
제일 견디기 힘들었 던 때는, 나의 인턴 이력이 거짓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 같다고 느껴졌을 때다. 이 바닥은 생각보다 좁아서 쉽게 직감할 수 있다. 나의 인턴 이력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았다. 당시 난 운좋게도 kt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2년차 계약이 종료되기 얼마 전 인사팀에서 나에게 정규직 제안을 해왔다. 나만 좋다면 노조 빵빵한 대기업에서 정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대로 눌러 앉으면 난 영원한 가짜 인턴 경력 이력서 꼬리를 뗄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제안을 거절하고 뛰쳐나왔지만 많이 후회했었다. 엄마와 가족, 다른 사람들에겐 회사에서 계약연장을 해주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인생 가장 큰 거짓말이다. 내가 뛰쳐나왔다곤 도저히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다음으로 큰 거짓말도 이력서와 관련이 있다. 나의 인턴 이력은 거짓이 아닙니다. 이 말을 어디다 해야겠는데 세련된 방법을 몰라서 내 블로그에 허구 이야기를 지어 올렸다. 내 절박함이 내몬 결과라는 건 핑계다. 그 이후론 이 짓을 다신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