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2.

증권사에서 매일 전날 기관들이 많이 산 상위 종목을 알려준다. 이들 종목 중 하나를 선택하기가 어렵다. 대부분이 전날 5% 이상 급등한 종목이라 쉽게 매수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떨어지길 기다리면 그냥 오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종목의 차트를 들여다봤다.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급등이 있기 전엔 종가가 120일선이나 60일선 근처로 온다는 것이다. 이런 종목을 찾으려면 2000개가 넘는 종목의 차트를 모두 열어봐야 한다. 가능하지만 시간이 많이 든다. 나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종가, 5일선, 20일선, 60일선, 120일선의 가격 형식으로 전체 종목 목록을 제공해주는 사이트가 있는지 찾아봤다. 없었다. 내가 만들어봤다. 정확하진 않지만 얼추 맞았다. 그래도 여전히 고르긴 어렵다. 계속 마이너스다. 왜 증권사는 이런 데이터 제공 서비스를 만들지 않을까.

2021. 2. 16. 요즘 본 책

제목을 보고 내가 미적분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사봤다. 깊이는 안 다루지만 기억이 나긴 함.

수학은 어렵지만 미적분은 알고싶어. 한스미디어

<오리진>은 재밌을 것 같아서 빌려 왔는데 챕터 1 읽고 손절했다. 그림이 없어서 내용을 이해하려면 머릿속으로 지구본 그리면서 읽어야 했는데 어려웠다.

오리진. ORIGIN.

주민센터 도서관 거의 1년만에 갔다.

2021. 2. 3. 난 좀 무던하고 대담해질 필요가 있어

의사 표현이 가능한 장애인이에게 알고싶은 게 있다면 그 질문은 본인에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같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물으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만약 장애인 뭔가를 부탁했을 때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가능한한 부드럽게 거절해 주세요. 장애인이 누군가에게 부탁할 땐 나름의 큰 용기를 낸 것입니다. 언어 장애가 있다면 더욱이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선 작은 정색에도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넘 예민한가, 소심한가 생각해보다가 적어보았습니다.

2021. 2. 2. 생각나는 대로 씀

어제 쓴 글 때문에 어릴 때 이야기를 더 하고싶다. 대학에 입학한 20살 때까지 보육원이 딸린 재활(병)원에서 살았다. 보육원은 미국에서 오신 선교사님이 설립해 처음엔 전쟁고아를 거둬 보호한 고아원으로 시작했다. 내가 살았던 기간에도 선교사님이 계셨다. 내 기억엔 두 분이 남아계신다. 미국에서 오신 제리 복 선생님. 이 분은 물리치료 선생님이셨다. 다른 한 분은 네덜란드에서 오신 안느 선생님. 이 분은 성경을 가르쳐주셨다. 우리말이 서툴러 성경공부 시간마다 통역사 선생님을 대동하셨다. 별다른 놀이가 없어서였는지 이 시간을 늘 기다렸다. 선진국에서 오신 선교사님들 덕에 당시의 최신문물을 볼 기회가 많았다. 필름 슬라이드나, 타자기, 청진기처럼 생긴 이어폰 같은 것들이 신기했다. 그중에 게임기도 있었다. 게임기는 나보다 연배가 높은 형들이 사는 방에 있었다. TV에 연결해 플레이하는 게임기였는데 겔러그와 그 외 여러 게임이 가능했다. 나는 조작이 어려워 형들과 다른 친구들의 플레이만 지켜보곤 했다. 그것으로도 난 재미있었다. 어느 날 어느(이름을 알지만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형이 컴퓨터로 뭔가를 하는 걸 보게됐다. 생애 첨 본 컴퓨터였다. 뭘 하는지 몰라도 까만 바탕에 놓인 초록색 글자들이 모니터 화면에서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있었다. 형이 넘 멋져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우리가 살던 방에도 컴퓨터 한 대가 생겼다. 당시 나는 내 또래의 남자 아이들 7~8과 한 방을 썼다. 컴퓨터는 어느 후원자 분이 기부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컴퓨터는 애플사의 16Bit 일체형 PC로 상당한 고가였다. 그땐 그것이 그렇게 고가의 전자기기인지 나와 모든 아이들이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시간을 나눠 PC를 썼다. 일종의 Time sharing 이라고 해야 하나. 30분 또는 1시간씩 돌아가며 컴퓨터를 썼다. 쓴다는 건 기껏해야 게임을 하는 거였다. 게임은 테트리스, 타잔 말곤 기억 안 난다. 게임이 지겨워지면 basic 언어로 놀았다. 잡지에 싣린 코드를 그대로 짜보고 돌려보는 놀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빠져들었다. 그 후로 내 꿈은 줄곧 프로그래머로 정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된 후로 꿈은 좀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아마도 윈도우95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도 이런 os나 프로그램을 개발해 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MS사의 창립자이자 CEO였던 빌 게이츠의 저서 <생각의 속도>가 내가 3학년 즈음 출간되었는데 사서 읽었었다. 멀리 떨어진 대형 서점에 갈 수 없어서 아는 선배(물리교육과 여선배)에게 부탁해 대리 구매했다. 그 댓가로 선배가 수강하던 전산물리 과제를 도와줬다. 이 선배님은 잘 살고 계시겠지.. 아, 선후 관계가 바뀐 것 같다. 내가 과제를 도와준 사실이 먼저고 책을 대신 사준 게 나중이다.

사회생활을 해갈수록 이 꿈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내 실력이 모자라였을 수도, 열정이 모자라였을 수도..

제일 견디기 힘들었 던 때는, 나의 인턴 이력이 거짓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 같다고 느껴졌을 때다. 이 바닥은 생각보다 좁아서 쉽게 직감할 수 있다. 나의 인턴 이력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았다. 당시 난 운좋게도 kt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2년차 계약이 종료되기 얼마 전 인사팀에서 나에게 정규직 제안을 해왔다. 나만 좋다면 노조 빵빵한 대기업에서 정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대로 눌러 앉으면 난 영원한 가짜 인턴 경력 이력서 꼬리를 뗄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제안을 거절하고 뛰쳐나왔지만 많이 후회했었다. 엄마와 가족, 다른 사람들에겐 회사에서 계약연장을 해주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 인생 가장 큰 거짓말이다. 내가 뛰쳐나왔다곤 도저히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다음으로 큰 거짓말도 이력서와 관련이 있다. 나의 인턴 이력은 거짓이 아닙니다. 이 말을 어디다 해야겠는데 세련된 방법을 몰라서 내 블로그에 허구 이야기를 지어 올렸다. 내 절박함이 내몬 결과라는 건 핑계다. 그 이후론 이 짓을 다신 하지 않았다.

2021. 2. 1. 재활의학과 의사 선생님

전동 휠체어를 바꾸는 문제로 재활의학과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았다. 아무래도 내가 원하는 휠체어는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을 것 같다. 지금 쓰는 휠체어에 베터리만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새 휠체어는 나중에 재정 상황이 좀 더 여우로워지면 바꾸기로 하자.

재활의학과 선생님을 봬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 병원에 막 부임한 재활의학과 과장님. 성함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분이 하신 말 하나가 기억난다. 나에게 하신 말씀은 아니고 같이 계셨던 다른 선생님에게 하셨던 말이다. 이번에 대학생이 되는 아이라고 나를 소개하신 선생님에게 과장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시험해) 보는거지.

아직 이 말이 기억난다. 그때 그 과장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다.

2021. 1. 28.

오늘처럼 눈이 많이 온 날 차 타고 외출하긴 처음인 것 같다. 눈 많이 와서 좋다는 것보다 집에 어떻게 가지 하는 걱정뿐. 다행히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땐 눈이 그쳤다.

이젠 이력서 내는 건 더이상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부터 내 자리가 아니었다. 시도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자.

그래도 조금 우울하다.

2021. 1. 24. 채광

이사 온 집이 좋은 점 중 하나는 햇볕이 잘 드는 것이다. 낮에 형광등을 켜지 않아도 책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근데 오늘처럼 빛이 강렬히 들어오는 날엔 아무것도 못 하겠다. 주문해놓은 블라인드가 언제 오려나.

오후 2시 내 방 상황.

오전 9시 무렵부터 3~4시까지 햇볕이 가득 밀고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