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이나 <메이즈 러너> 같은 분위기로 시작해 <올드 보이>의 감정으로 달린다. <올드 보이>의 감정이라 함은, 나한테 누가 왜 그랬어?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빡침과 울분 같은 것. 그에 비해 결말의 답은 좀 허무하다. 그 과정에서 거듭되는 인물의 반전이 재밌다. 같은 편인 줄 알았던 인물이 알고보니 적이다. ‘내 편이 아니었네. 그럼 죽어줘야겠어’가 n번 반복된다.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죽는다. 후반부 두 여배우의 액션은 우리나라 영화에서 배운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집안의 시설과 도구를 활용한 액션 연기가 보는 사람에게도 타격의 통증이 전달된다. 맞거나 부딪칠 때마다 ‘ㅈㄴ 아프겠다’같은 관객의 리액션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액션을 ‘한국식’ 액션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대리로 진급하려고 토익 공부를 하던 고졸 여사원들이 회사의 불법 행위를 목격하고 조사하기 시작한다. 소시민 여성 캐릭터가 거대한 조직의 환경 범죄의 진상을 조사하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서사는 <에린 브로코비치>와 닮았다. 일종의 사회정의 구현 서사다. 그런데 보다보면 고아성(배역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이 왜 저렇게 열성적으로 개입하려는지 납득이 잘 안 된다.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저 큰 일을 벌인다고? 저걸 빌미 삼아서 진급이라도 하려는 걸까? 여하튼 어지간한 정의감과 애사심이 아니고선 저런 열정이 나올 순 없다. 영어로 시작해 환경 문제, 끝에는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뭔가 중심이 없는 느낌이다.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은 ‘영어’가 주재료인듯 보이나 그렇지 않다. 영어는 양념이다. 양념도 그냥 양념이 아닌 맛이 진한 양념이다. 요리 맛의 8할을 양념이 책임진다면 이 영화의 영어도 그렇다. 지금은 잘 들을 수 없는 영어 발음을 들을 수 있다. 8,90년대를 학생으로 보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연세 많으신 영어 선생님의 일본식 영어 발음을. 삼진그룹 여사원들이 그 발음으로 영어를 말한다. 일본식, 한국식, 미국식 영어를 한 영화 안에서 들을 수 있다.
출연한 까메오의 존재감은 조연 배우급이다. 눈에 띄어서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분위기가 환기된다. 타일러와 박근형 선생님이 그랬는데. 지금 찾아보니 타일러는 조연 배우로 나온다. 타일러, 까메오로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90년대 어른들의 스타일과 사무실 풍경을 볼 수 있다. 여직원들의 유니폼이나 사복 패션, 헤어 스타일을 보면 어떻게 저런 스타일이 유행이었을까 싶다. 사무실 풍경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소품들이다. 볼룩이 모니터나, 유선 전화기 같은 유물을 최신식 신문물로 쓰고 있던 시대라니.. 그중에 눈에 더 들어온 건 삐삐와 공중전화. 그리고 더 이상하게 보인 건 아침마다 여직원이 커피를 타다 바치는 게 업무의 시작이라니. 지금으로선 상상을 할 수 없는 사무실 풍경이다.
감독이 넷플릭스 돈으로 파리 덕질한 것 같다. 파리의 예쁜 것만 보여준다. 프랑스 관광청이 제작비를 댔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미국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에밀리가 어쩌다 파리로 파견 근무를 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스토리다. 프랑스어를 봉쥬르 말곤 아는 게 없다는 걸 놀림감과 유머로 이용한다. 천하의 미국 엘리트 시민권자도 촌뜨기로 만들어버리는 파리의 콧대 높음이란 대체..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패션쇼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이 입고있는 옷이 넘 눈에 띈다. 그런 옷들이 매 씬 바뀐다. 촬영 시간의 상당 부분이 배우들이 옷 갈아입는 데 쓰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의상 담당자가 열일한 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