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을 수 없는 문장들 <잊기 좋은 이름>

나중에 혹시 김애란 작가님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연필 하나를 선물해 드려야지.

책 읽을 때 연필로 밑줄 긎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님에게 어떤 연필이 좋을까 생각해보니 4b 연필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문장은 두껍게, 어떤 문장은 얇게, 문장이 주는 감흥에 따라 채도와 두깨가 다른 선을 긋기에 가장 용이할 것 같은 4b 연필.

<잊기 좋은 이름>은 가느다란 선으로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어느 한 문장을 굵은 선으로 밑줄 긋기 시작하면, 다른 문장들이 서러워할 것 같아 공평하게 똑같은 두께의 선으로 그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이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난 눈으로만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연필을 손에 잡은 지도 오래지만 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 행위가 고난도의 곡예가 돼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손글씨 쓰기를 중단한 게 넘 후회된다.

연필 한 자루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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