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3. 동네 밥집냥이

동네 밥집 냥이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나눴다기 보다 나만 혼자 일방적으로 고한 것 같다.

밥집냥아, 나 곧 이사 갈 것 같아. 널 다신 못 볼거야. 잘 살아.

밥집냥이는 그냥 멀뚱히 나를 쳐다보다가 가게 안으로 사라졌다.

오다가다 가끔 만나는 동네 밥집냥이.

2020. 11. 11. 안드로이드 앱 개발

안드로이드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거의 10년 만이다. sdk도 바뀌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환경 세팅하는 건 여전히 까탈스럽다.

왜 애뮬레이터 실행에서 막히는 거야!

“The emulator process for AVD xxx was killed”

구글링으로도 해결을 못하고 있다.

2020. 11. 8. 마음을 다치지 않는 방법

내 생각과 느낌은 주관적이서 내가 항상 옳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예의 같은 건 보편적이어서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가까워지고 싶지도 않고 가까워질 필요도 없고 그러고 싶다고 해도 웬만한 성인 군자가 아니고서야 해낼 수도 없다.

살다보면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게 상책이지만 그건 내 의지밖의 일일 때가 많고 만나봐야 사람의 면모를 알게 된다.

그런 사람에는 두 유형이 있다. 고의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과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다. 어느쪽이 가까이 지내기에 더 나쁜가를 생각해보면 처음엔 전자일 수 있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답은 후자로 쏠린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반응을 불러오게 될지에 대한 감각이 없는 사람은 그때 곧바로 대응하지 않으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말하면 내가 그런 말을 했나? 그런 행동을 했나? 되묻고 그게 왜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이런 일을 당하면, 마음 상한 말을 듣게 되면 곧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둔다. 발음이 어눌한데 흥분하거나 어려운 말을 할 때면 더 어눌하고 더듬는다. 그래서 그자리에서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나의 이런 태도가 문제를 더 키우는 것 같다.

앞으로 그런 말은 나에게 하지 마세요. 그런 행동은 하지 마세요. 같은 말은 그자리에서 당당하게 하고싶다. 그래야 무시받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는다.

2020. 11. 8. 살고싶다는 농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사람은 그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허지웅 작가의 글이 예전과 다르다. 그가 달라졌을 수도 내가 달라졌을 수도 아니면 둘 다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죽은 것들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의 글이 온순해졌다. 예전의 치기어린 당당함과 날선 직설 같은 글이 아니다. 나는 그런 그의 글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의 글이 싫어진 건 아니다. 다만 아쉽고 그리울 뿐이다. <살고싶다는 농담>에서 그는 남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말한다. 이 일은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었다고 간증한다. 정말 이건 진실이다. 나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얼마나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지 알고있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다. 피혜의식과 결별하라.”

그에게 이 책에서 한 문장만 고르라고 협박한다면 아마도 그는 주저없이 이 문장을 고를 것이다. 피혜의식과 결별하기란 쉽지않다. 그것은 곧 이전의 삶을 버리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해야 한다. 모두가 피혜의식을 가슴속에 끓어않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옥인 세상은 더 극심한 지옥이 될 것이다.

우리는 힘들 때 죽고싶다는 말을 진담으로 하고 많은 이들이 그 말을 실행으로 옮기는 세상을 살고있다. 그가 제목을 <살고싶다는 농담>으로 붙인 건, 이들이 살고싶다는 말을 간절한 소망이 아닌 농담처럼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 같다.

허지웅 작가. 살고싶다는 농담

지금 막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다. 허지웅 작가의 연상 단어는 철학자 니체다. 니체는 그가 사랑해마지 않은 철학자다. 만약 니체가 오늘날 태어나 살아간다면 허지웅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만약 니체가 살아 활동하던 시대에 인터넷이 존재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과 글에 감명받고 깨달아 세상은 지금보다 좋아졌고 니체의 말년은 미치광이로 비참해지지 않았을 텐데. 하나마나한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허지웅 작가의 심신의 건강을 빈다.

2020. 11. 6. 주식투자와 부채

카드사에서 빌린 돈을 다 갚았다. 고맙게도 오래된 학교, 교회 선배가 빌려주셨고 그 돈으로 갚을 수 있었다. 주식으로 수익이 나도 이자비용을 제하면 거의 현상유지와 손실 구간만 왔다갔다 했다. 마감이 있는 돈으로 주식거래를 하면, 원금을 까먹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2~3%에도 손절을 하고 큰 수익에도 더 큰 수익을 노리다가 그나마의 수익마저 놓친다. 주식투자는 멘탈이 중요한 것 같다. 조바심이 큰 적이다. 마감이 있는 돈은 조바심을 유발한다.

2020. 11. 6. 신차 구매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신차를 가득 싣은 긴 트레일러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 간 우체국이 있는 거리는 수입 자동차 매장이 한 블럭 건너 하나씩 있어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일을 마치고 우체국에서 나오니 주차된 트레일러는 그대로인데 싣려있던 고급차량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8대는 넘어보인 신차들이 한 대리점에서 다 팔린 거라니.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지난주 백화점에 갔을 때처럼 모든 사람이 어려운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에서 출고된 신차를 가득 싣고온 트레일러였다

2020. 11. 2.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개그맨 박지선씨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보도되는 기사와 SNS로 보아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 같다. 모든 부고 기사가 슬프고 충격적이지만 오늘은 정말 마음이 내려앉는다.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시길.

지금도 절망과 우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 분들이 끝까지 살아낼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도합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2020. 11. 1.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전에 내가 주식을 하나도 모른다고 했지만 어느정도 아는 것도 있다. PER, ROE, 등 같은 기본적인 개념은 오래전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할 때 익혔다. 주식 투자 관련 책들도 몇 권 읽었는데 그 중 한 권은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버신 시골 의사 선생님이 쓴 <주식이란 무엇인가>다. 깨나 두꺼웠던 걸로 기억된다.

여러 책들을 읽고 실제 해보면서 느낀 건 주식이 책에 쓰인대로 움직이지도 않고 사람마다 하는 말들이 다 같지 않더라는 것. 분명 수치적으로 볼 땐 저평가된 종목인데 하락하거나, 고평가로 보이는데 올랐다. 왜 그런지 알 길이 없었다. 큰 돈 가진 누군가가 내리고 싶으면 내려가고 올리고 싶으면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일을 잠깐 쉬는 한 달 동안 리딩방에 유료회원으로 가입했다. 한달에 10여만워을 내면 매수종목과 매수/매도 타이밍을 방송으로 알려주는 서비스였다. 실시간 방송을 보는 회원수는 대략 100여 명이었다. 한 달 후에 탈퇴하고 다신 이용하지 않았다. 난 방송에서 알려준 종목을 매수가 근처에서도 살 수 없었다. 손이 느려 다른 회원이 다 산 뒤에 더 높은 가격에 사버리거나 포기했다. 다시 혼자서 이것저것 단타(대개 사나흘 간격)로 거래해보면서 수익과 손해를 반복했다. 그러다 다시 이직에 성공해 주식을 장기 보유하게 댔는데 마지막으로 거래한 두 종목이 우진세렉스와 한창제지였다. 우진세렉스는 플라스틱 사출기를 만들어 파는 회사로 미래가 유망해 보였고 한창제지는 앞으로 종이/목재 쪽이 유망해 보였고, 당시 매우 매우 저평가돼 보였다. 그런데 우진세렉스 주가는 오르고 한창제지 주가는 내려갔다. 그때 나는 조금(대략 10%) 오른 종목은 팔고 그 돈으로 많이 내린 종목을 더 샀다. 그런데 그이후로도 오르는 종목은 더 올랐고, 내린 종목은 더 내려갔다. 그러면서 알게된 건 수익중인 빨리 팔면 안 된다는 거였는데, 지금 내 상황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주식은 힘과 돈 있는 사람들에 의해 오르고 내린다. 작은 개미는 그 사람들의 등에 올라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