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부터 정주행한 <워킹 데드>를 시즌8 ep8까지 왔다. 오늘은 빌런 네간이 죽었다. 시즌이 거듭되는 동안 많은 등장인물이 죽음으로 하차했다. 그럴 때마다 아쉽고 작가진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극중에서 스티븐 연이 죽었을 땐 정말 더이상 안 볼려고 했다. 그 결과로 언젠가부터 누구누구 죽으면 더이상 안 볼거야. 이런 마음으로 다음화를 보고있다. 지금은 칼 죽으면 안 볼거야. 이런 마음으로 본다. 그런데 네간은 달랐다. 네간은 죽기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죽으니까 엄청 허무하다.
Author: 딸기맛우유
나 어떡하면 좋니 정말
비 오는 날엔 커피가 더 땡겨.
아메리카노 향 맡으니까 살 것 같아.
등떠밀리고 쫒기고 떠내려가다가 어쩌다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친구는 죽고 없어 <1917>
영상이 아름다웠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저녁 땅꺼미와 새벽 미명의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1917>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서서히 밝아지는 빛의 그라데이션을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는 진귀한 경험을 주었다. 영화 안에서 동이 터올 땐, 오래 전 밤샘하다가 날이 밝아오는 걸 느꼈을 때의 기묘한 자부심 같은 걸 다시 체험한 것 같았다. 정말 빛의 밝기 차를 잘 보여준 촬영이었다. 오스카 촬영상을 안 받았으면 안 될 영화였던 것 같다.
하루 안에 두 병사가 공격 중지 명령 지령을 전달하러 가는 스토리로 보면 마치 미식축구 선수가 상대 진영으로 터치다운을 향해 처음부터 끝까지 숨가쁘게 전력 질주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중간중간 쉴 틈을 주었다. 긴잔감을 줬다 풀었다 하는 리듬이 적당히 좋았다. 주인공 스코필드가 어느 여자와 아기가 살고있는 공간에서 미적댈 땐 난 속으로 그를 닥달했다. 빨리 가라고.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어! 라고 하면서.
스토리는 뭐랄까. 귀인열전 같고 등떠밀리고 쫒기고 떠내려가다가 어쩌다 목적지에 도달한다. 누구 하나가 사라지거나 스코필드가 위험에 빠지면 어디선가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등떠밀리고 쫒기고 떠내려가다가 어쩌다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친구는 죽고 없다. 우리 인생도 그런 거면 넘 우울해.
백예린 노래 듣고있는 일요일 오후
교회 안 가도 죄의식 없는 일요일 오후 집에서 백예린 노래 듣고 있으니까 넘 좋아.
이름에 내가 제일 쓰기 힘든 ㅖ가 들어가 있어도 백예린은 천번도 쓸 수 있어.
ㅖ를 쓰려면 한 손으로 키판의 두 키를 같이 눌러야 해.
예배 없는 일요일, 이건 진짜 종말각
간밤에 목사님이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예배는 온라인 생중계만 있다고 한다.
일요일인데 교회에서 예배를 못 드린다니 진짜 종말이 올 것 같다.
<워킹 데드> 프리퀄 안에 사는 것 같아
버스에 사람이 없을 시간이 아닌데 나 말고 승객이 없었다. 진짜 좀 과장해서 인류 멸망 전조처럼 느껴졌다.
워킹 데드 프리퀄이 나온다면 있을 것 같은 장면이었다.
코로나 보균자와 확진자가 좀비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도시 분위기.
애써 막은 확산을 신천지가 망친 것 같다. 신천지 개XX들 이번 기회로 멸종시켜야 한다.
구글은 짤맛집
구글이 내가 찍은 동영상으로 예쁜 짤을 만들어줬어.
구글, 아주 칭찬해.
어쩌다 빠져든 아침 드라마 <맛 좀 보실래요?>
어쩌다 아침 먹으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빠져들었다.
일어나는 시간이 드라마 방송 시간과 얼추 비슷하다.
스토리는 막장 오브 막장이다. 한마디로 개막장 분륜 스토리.
근데 이 드라마에 빠진 건 음악과 효과음 쓰는 포인트 때문이다.
스토리가 아니라 음악과 효과음이 넘 웃기다.
편집PD 재밌는 사람 같다.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자
불면증으로 몇일 밤잠을 설쳤더니 몸에 반응이 바로 나타난다.
잇몸과 혓바닥 아플 때 가능하면 약을 안 먹으려고 하는데 오늘은 약을 사먹어 봤다.
먹은 지 한 시간이 조금 지난 것 같은데 다 나은 것 같다.
사놓고 안 읽은 책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는 70대 시인의 시와 사랑에 빠진 20대 작가가 쓴 일기와 같은 에세이다.
끝까지 완독한 책만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왓차에 별점을 기록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 읽을 꺼리가 없거나 어쩌다 한 번씩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책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 아마 완독할 날은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책의 대부분은 사놓고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이다. 책의 입장에서 보면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있는 사람은 나태주 시인보다 김예원 작가를 알아간다. 만약 내가 좀더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나이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얼굴도 모르는 작가를 짝사랑하게 됐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