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8.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대리로 진급하려고 토익 공부를 하던 고졸 여사원들이 회사의 불법 행위를 목격하고 조사하기 시작한다. 소시민 여성 캐릭터가 거대한 조직의 환경 범죄의 진상을 조사하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서사는 <에린 브로코비치>와 닮았다. 일종의 사회정의 구현 서사다. 그런데 보다보면 고아성(배역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이 왜 저렇게 열성적으로 개입하려는지 납득이 잘 안 된다.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저 큰 일을 벌인다고? 저걸 빌미 삼아서 진급이라도 하려는 걸까? 여하튼 어지간한 정의감과 애사심이 아니고선 저런 열정이 나올 순 없다. 영어로 시작해 환경 문제, 끝에는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뭔가 중심이 없는 느낌이다.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은 ‘영어’가 주재료인듯 보이나 그렇지 않다. 영어는 양념이다. 양념도 그냥 양념이 아닌 맛이 진한 양념이다. 요리 맛의 8할을 양념이 책임진다면 이 영화의 영어도 그렇다. 지금은 잘 들을 수 없는 영어 발음을 들을 수 있다. 8,90년대를 학생으로 보냈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연세 많으신 영어 선생님의 일본식 영어 발음을. 삼진그룹 여사원들이 그 발음으로 영어를 말한다. 일본식, 한국식, 미국식 영어를 한 영화 안에서 들을 수 있다.

출연한 까메오의 존재감은 조연 배우급이다. 눈에 띄어서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분위기가 환기된다. 타일러와 박근형 선생님이 그랬는데. 지금 찾아보니 타일러는 조연 배우로 나온다. 타일러, 까메오로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90년대 어른들의 스타일과 사무실 풍경을 볼 수 있다. 여직원들의 유니폼이나 사복 패션, 헤어 스타일을 보면 어떻게 저런 스타일이 유행이었을까 싶다. 사무실 풍경에서 눈에 들어오는 건 소품들이다. 볼룩이 모니터나, 유선 전화기 같은 유물을 최신식 신문물로 쓰고 있던 시대라니.. 그중에 눈에 더 들어온 건 삐삐와 공중전화. 그리고 더 이상하게 보인 건 아침마다 여직원이 커피를 타다 바치는 게 업무의 시작이라니. 지금으로선 상상을 할 수 없는 사무실 풍경이다.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

2021. 1. 26. 에밀리, 파리에 가다

감독이 넷플릭스 돈으로 파리 덕질한 것 같다. 파리의 예쁜 것만 보여준다. 프랑스 관광청이 제작비를 댔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미국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에밀리가 어쩌다 파리로 파견 근무를 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스토리다. 프랑스어를 봉쥬르 말곤 아는 게 없다는 걸 놀림감과 유머로 이용한다. 천하의 미국 엘리트 시민권자도 촌뜨기로 만들어버리는 파리의 콧대 높음이란 대체..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패션쇼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이 입고있는 옷이 넘 눈에 띈다. 그런 옷들이 매 씬 바뀐다. 촬영 시간의 상당 부분이 배우들이 옷 갈아입는 데 쓰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의상 담당자가 열일한 게 보인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 ★★★

2021. 1. 10. 조제. 케이블 vs. OTT

볼까 말까 망설이던 영화 <조제>를 봤다. 남주가 무책임한 건 똑같아 좋진 않았다. 별점 3개를 줬다. 극장 표값 11000원으로 방구석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보니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비싸도 볼 사람은 본다는 건가. 극장에서 내려오자마자 넷플릭스 같은 OTT에 올라오지 않고 케이블로 먼저 오는 걸 보면 OTT보다 케이블이 수익성이 좋은가 보다. CP가 갑인가 보다.

조제 2020.

2020 연말 결산: 올해의 영화

1월 1일부터 12월 18일까지 한 해 동안 본 극장에서 영화가 전부 12 편이다. 올해 최고의 영화를 뽑기엔 넘 부족한 수다.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와 드라마 편 수를 합하면 조금 더 늘지만 그래도 최근 몇년 간 한 해 동안 본 영화 수론 가장 적다. 극장 개봉 영화 중 왓챠에 별점을 준 영화 10 편먼 꼽았다.

  1. <1917> ★★★★★ 5.0
  2. <작은 아씨들> ★★★★☆ 4.5
  3. <고흐, 영원의 문에서> ★★★★ 4.0
  4. <그린 랜드> ★★★★ 4.0
  5. <남산의 부장들> ★★★☆ 3.5
  6. <조조 래빗> ★★★☆ 3.5
  7. <스파이 지니어스> ★★★☆ 3.5
  8. <반도> ★★★☆ 3.5
  9. <미드웨이> ★★★ 3.0
  10. <닥터 두리틀> ★★★ 3.0

등떠밀리고 쫒기고 떠내려가다가 어쩌다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친구는 죽고 없어 <1917>

영상이 아름다웠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저녁 땅꺼미와 새벽 미명의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1917>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서서히 밝아지는 빛의 그라데이션을 영화관 스크린으로 보는 진귀한 경험을 주었다. 영화 안에서 동이 터올 땐, 오래 전 밤샘하다가 날이 밝아오는 걸 느꼈을 때의 기묘한 자부심 같은 걸 다시 체험한 것 같았다. 정말 빛의 밝기 차를 잘 보여준 촬영이었다. 오스카 촬영상을 안 받았으면 안 될 영화였던 것 같다.

하루 안에 두 병사가 공격 중지 명령 지령을 전달하러 가는 스토리로 보면 마치 미식축구 선수가 상대 진영으로 터치다운을 향해 처음부터 끝까지 숨가쁘게 전력 질주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중간중간 쉴 틈을 주었다. 긴잔감을 줬다 풀었다 하는 리듬이 적당히 좋았다. 주인공 스코필드가 어느 여자와 아기가 살고있는 공간에서 미적댈 땐 난 속으로 그를 닥달했다. 빨리 가라고.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어! 라고 하면서.

스토리는 뭐랄까. 귀인열전 같고 등떠밀리고 쫒기고 떠내려가다가 어쩌다 목적지에 도달한다. 누구 하나가 사라지거나 스코필드가 위험에 빠지면 어디선가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등떠밀리고 쫒기고 떠내려가다가 어쩌다 목적지에 도달하는데 친구는 죽고 없다. 우리 인생도 그런 거면 넘 우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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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로 옮겨도 살아있는 19세기 감성 <작은 아씨들>(2019)

<작은 아씨들>로 그레타 거윅의 다음 작품부터는 닥치고 보기로 했다.

연기, 각색, 의상, 소품, 공간, 음악까지 모든 것이 사랑스럽다.

특별히 난 음악이 넘 좋았다. 음악을 넘 잘 쓴 것 같다.

이젠 진귀한 장면이 돼버린 잉크 적셔서 쓰는 만년필 필체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도 그런 만년필로 써보고 싶다.

19세기 의상은 전부 비슷해 보이는데 이 영화의 의상은 캐릭터마다 어딘가 다른 개성이 있어 보였다.

앤딩도 넘 사랑스러웠다.

나중에 언젠가 꼭 벽난로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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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을 보고

김제규가 박통 마빡에 총알 쏴 박는 씬 볼 때 정말 속이 후련하더라.

이 장면을 위해 나머지 모든 씬이 봉사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거다.

김제규가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아직 전두환이 독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생각하니까 ㅈㄴ 끔찍하다.

지금이라도 김제규를 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해도 비난할 수 없게 <남산의 부장들>은 그의 결단을 정당화하는 데 주력한다.

아쉬운 건 박통의 폐륜적인 악행을 그리는 데에는 소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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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이병헌은 맨날 멋진 역만 맡는 것 같다.

The Oscar goes to …

2020년 2월 10일 오늘을 기록하면서 오스카를 언급하지 않는다면 기생충이 평생 이불킥 꺼리로 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이 자랑스럽고 그의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가 자랑스럽고, 우리나라 영화가 자랑스럽다.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고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어느 후보가 받아도 태클 걸지 못할 쟁쟁한 후보들을 재치고 4관왕을 거머쥔 것도 기쁘지만 그보다 더 기쁘고 자랑스러운 건 마틴 스콜세지,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분들과 할리우드 중심부에서 친구처럼 농담도 주고받으며, 어울려 즐기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을 보는 것이다.

축제에 참여한 세계 모든 배우와 감독, 그리고 전세계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밤을 맘껏 기뻐하고 즐겼으면 좋겠다.

2020 오스카상을 수상한 모든 분들, 축하합니다.




<맘마미아!2> 전편의 팬과 밀당을 할 줄 아는 속편


10년만에 돌아온 <맘마미아!2>는 전편의 팬과 밀당을 할 줄 아는 속편이다. 도나의 죽음으로 메릴 스트립의 도나는 보지 못할 거라는 실망감을 주며 시작하지만 더 큰 감동을 주기 위한 올 파커 감독의 배려 아닌 배려다. 호텔 재개장 파티 초대에 응할 수 없다는 콜린 퍼스의 해리도 그의 큰 그림의 일부다. 인물들의 등장 순서는 전작의 팬이 보고싶어하는 배우 순위에 맞춘 건 아닐까 의심스럽다. 전작의 배우들이 스크린에 속속 소환되면서 감동은 끓는점에 가까워져간다. <맘마미아!2>의 스토리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소피가 호텔 재개장 파티를 준비하는 현재와 젊은 도나가 소피의 세 아빠와 엮이는 과거의 시간이 순차적으로 오간다. 도나의 과거는 험난한 고생길이었을 거라 생각한 나에겐 예상밖이다. 도나의 과거는 뜻밖의 귀인과 행운으로 연이어진 삶으로 그려진다. 나는 과거보다 현재의 이야기가 좋았다. 과거는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깊은 이야기로 들어가려할 때마다 노래와 춤으로 퉁치며 넘어간다. 이 '닥치고 노래나 부르자'는 뮤지컬식 연출이 난 너무 좋다. Sher의 등장신은 너무 멋있어서 울 뻔했다. 마지막으로 다음 편에 바라는 소망 하나가 있다. 다음 편에서는 유전자 검사 한번 해보자. 진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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