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한낮의 교회


수요일 한낮의 교회엔 절박함이 있다.

듬성듬성 홀로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속에 있는 절박함이 보인다.

모두 가슴속에 절박함 하나씩은 품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처럼 특별 연주가 예고없이 있는 날이 좋다.

찍고 있느라 오롯이 감상할 수 없었다.

목사님 설교말씀보다 첼로와 바이올린 소리에 위로받는 날이 있다.


나만 알고싶은 냥이와 댕댕이들


내가 인스타 폐인이 된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냥이와 댕댕이 때문이다. 알음알음 팔로우하고 있는 냥이와 댕댕이 계정만 10개에 가깝다. 냥이와 댕댕이를 좋아하지만 여건상 함께 살 수 없는 나에게 이들 계정은 소소한 행복을 준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다. 피드에서 잘 보이지 않으면 병이 들었나, 혹여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나 하는 걱정을 주기도 한다. 모든 냥이와 댕댕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때때로 계정주이자 집사에 대해 알고싶어지기도 하지만 단념하곤 한다. 그저 랜선 집사로만으로도 좋다. 아래는 내가 아끼는 냥이와 댕댕이 계정의 스샷이다. 계정 아이디와 이름, 그밖의 정보가 될 만한 것들은 가렸다. 계정주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고 오래도록 나만 알고싶은 계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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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결함


이번주는 망언, 실언, 비하 발언 기사만 보인 것 같다. 기사의 인물은 실수였다,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진 몰랐다며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문제는 발언이 아니다. 감성의 문제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를 생각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발언들을 들여다보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감성엔 결함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이 있다.

1. 몸도 불편한데 책도 내고 대단하시네요.

이 말은 여자인데 공부도 잘하고 대단하시네요. 라는 말과 같다.

2. 이 사람은 왜 우리 모임에 나오는거야?

'이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묻는 건 나는 이 사람과 다른 분류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 이 사람은 이거 싫어하지 않아?

발언의 당사자를 3자화하는 질문. 앞에서 듣는 '이 사람'은 듣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런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싫다.


엄카 써도 되는 나이


어제 엄마가 이걸로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카드를 주셨다.

이때 아들로서 보였어야 할 올바른 반응은, 아닙니다. 나이가 몇살인데 엄카를 씁니까 하면서 거절하는 것일까. 아니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넙죽 받아 쓰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 생각한다. 엄마도 그걸 원하실 거라 생각하고 오늘은 엄마 카드로 밥을 사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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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


엄마가 외가 가족 모임 때문에 경주에 가셨다.

지금 집엔 나 혼자다.

누굴 불러서 밤새 같이 놀고 싶다.

배달음식 시켜 먹으면서 영화 보고 게임기로 게임도 하고

그러다가 잠오면 아무나 먼저 잠들기.

이렇게 같이 놀 수 있는 서람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