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꽃집 앞에 가장 먼저 온다

맨날 앞을 지나는 꽃집인데 오늘은 그냥 지니가기 싫었다.

아무 이유없이 꽃을 사고싶은 날이다.

사고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사진을 찍었다.

봄은 아무 이유없이 꽃을 사도 되는 계절이다.

동네마다 있는 편의점이나 까페 수만큼 꽃집이 있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따위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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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닌데, 그런 게 아닌데

인스타그램에서 차단당하면 내 팔로잉 리스트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 방금 알게됐다.

매일 피드나 스토리에서 보이던 계정이 어느날부터 안 보이기 시작하면 차단을 의심한다.

이 의심을 검증하는 방법은 DM 방에 들어가보거나 계정 ID를 검색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ID가 기억나지 않거나 전에 보낸 DM이 없으면 차단 여부를 알기가 어렵다.

차단당하면 죄인이 된 기분이다.

내가 뭘 잘못했지. 과거를 복기한다.

어제 블로그에 쓴 글이 화근이다.

쥐구멍 안으로 숨고싶다.

난 정말 욕망덩어리다.

실은 나란 인간은, 실제로 만나게 되면 아무도 거절 못할 것 같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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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 좀 데리고 살아줘

누가 나 좀 어장에 가둬줬으면 좋겠다.

본의 아니게 어장 관리를 하게 된다.

어장 관리는 그만하고 싶다.

나와 말만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같은 몸매에 예쁜 얼굴의 사람에게 자꾸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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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건진 한 문장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예술이 예술가에게 주는 느낌은 수학의 증명만큼이나 절대적 진리다. 에드거 엘런 포의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중에서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외워지는 문장이 있다. 의미를 잘 몰라도 외워지는 문장이 있다. 단 한 번 스쳐 읽었는데 기억에 박제되는 문장이 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책만이 하는 고유의 일이다. 책의 신이 있다면 그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다. 나에게 한 문장과의 만남이란 이런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제목으로 선정된 단편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을 제외하곤 소설을 읽는 맛이 없었다. 19세기 작품이어서인지, 내용이 잘 와닿지가 않았다. 인문서나 교양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좀 어려웠다. 제목으로 선정된 작품은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다. 열기구를 타고 달에 갔다가 못 돌아온 사람의 편지를 외계인이 전해주면서 시작하는 스토리인데, 19세기 사람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이 귀여웠다. 찾아보니 작가가 미국 근대소설의 아버지라고 한다. 미국 근대소설이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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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은 4년에 한 번 돌아온다

2월 29알 오늘은 1년에 하루가 더 주어지는 해의 그 하루다.

4년마다 2월 29알이 돌아올 때마다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매번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원래 오늘은 전시회에 가볼 계획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가게 되어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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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D가 쪼롬이


이 동영상이 내 대학 생활의 기억을 소환했다.

내 대학 생활은 자랑스럽게 떠벌릴 만하지 않다. 학점(3.7/4.5)도 높지 않고, 그렇다고 연애에 몰두한 것도 아니다. 다만 1학년 1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교내 교회 동아리(출판부)에 발을 담갔고, 심심할 때 게임을 만들고 놀았다. 과 동기와 과 선후배는 지금 연락이 닿는 사람은 없지만, 동아리 사람들과는 연락이 닿는다.

학점 관리는 엉망이었던 건 조금 후회된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표에 D가 하나 있는데 그걸 왜 재수강 안 했는지. 인생 학점이 최하였던 1학년 1학기에 수강한 일반화학을 D로 받았다. 교수님이 분명 재수강하라고 D로 준 것 같은데 성적표에 A,B,C,D가 쪼롬이 있는 것이 예뻐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두고 졸업했다.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가끔 꿈에 성적표가 나온다.


밑줄 그을 수 없는 문장들 <잊기 좋은 이름>

나중에 혹시 김애란 작가님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연필 하나를 선물해 드려야지.

책 읽을 때 연필로 밑줄 긎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님에게 어떤 연필이 좋을까 생각해보니 4b 연필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문장은 두껍게, 어떤 문장은 얇게, 문장이 주는 감흥에 따라 채도와 두깨가 다른 선을 긋기에 가장 용이할 것 같은 4b 연필.

<잊기 좋은 이름>은 가느다란 선으로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어느 한 문장을 굵은 선으로 밑줄 긋기 시작하면, 다른 문장들이 서러워할 것 같아 공평하게 똑같은 두께의 선으로 그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이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난 눈으로만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연필을 손에 잡은 지도 오래지만 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 행위가 고난도의 곡예가 돼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손글씨 쓰기를 중단한 게 넘 후회된다.

연필 한 자루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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