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30.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자서전 또는 에세이이로 알고 끝까지 읽었다. 내가 그렇게 오해한 건 아마도 제목 때문인 것 같다. 제목에 들어간 ‘필사의 밤’이 그렇게 만들었고 소설속 주인공이 시인 지망생이어서 더 그랬다.

책 뒷부분에 붙은 구병모 작가와 저자 김이설 작가의 글을 읽기 전까지 이 소설의 이야기가 정말 작가의 과거인 줄 알았다. 아니어서 다행이란 안도보다 정말 누군가의 현실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고, 어른이 되고도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게 답답해 집을 나오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내 마음 같다.

김이설 작가의 중단편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밀레의 서재

이기주의 인문학 산책

  1. 이기주 작가님은 국어사전을 끼고 사시는 것 같다. 글마다 단어의 정의가 거의 빠짐없이 나온다. 글에 단어의 정의가 나오면 글쓴이의 연배가 좀 있게 느껴진다. 글도 좀 차갑게 다가오게 마련인데 <이기주의 인문학 산책>은 그렇지는 않았다. 책 제목에 자기 이름을 넣으면 어떤 기분일까.

2. 이제 국어사전을 종이책으로 보는 사람은 없겠지.

3. 서점에 오랜만에 갔다. 서점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해도 마음이 편하다.

4. 지금 알았다. 이 책은 밀레가 독점 출판했다. 서점 사이트 검색 결과에 안 뜬다. 밀레 정기구독자만 소유할 수 있는 책이었구나.

<데미안>과 한 사람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몇 번 째인지는 모르겠다. 읽을 게 없거나 한 사람이 생각날 때면 책장에서 꺼내 본다. 책 좀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읽어본다는 책이 있다면 <데미안>은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는 책일 것이다. 나는 처음 읽을 때 중간에 포기했었다. 15살의 나에게 어렵기도 했고 재미도 없었다. 어려웠던 건 내용도 내용이지만 세로 쓰기로 인쇄된 옛날 책이었던 이유가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애써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그건 빌려 읽는 책이어서였다. 빌려준 사람은 누나라고 불렀던 선생님이었다. 지금 만나게 된다면 아직 누나라고 부를 것 같다. 누나는 내가 고입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해줬고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쳐주셨다.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해 주셨고 연습문제 풀이도 도와주셨다. <데미안>을 빌려주실 때 아끼는 책이라고 하셨다. 나는 책을 돌려줄 때 다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려워서 읽다 말았다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그날 나는 처음 누나에게 질책을 들었다. 누나는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광호야, 넌 다른 사람들보다 세 배나 열심히 해야 해.

그때 난 이 말의 진짜 의미를 몰랐다. 단순히 3년치 과정을 1년에 끝내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었다. 그때의 나에겐 뭔가를 알아간다는 게 즐거움이었고 어디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공포였다. 밤마다 잠들기 전 누워서 오늘 뭐했나를 복기하고 내일 공부해야 할 내용이 뭔지 생각할 때가 가장 좋았다. 누나는 삼각함수를 공부할 때 쯤 나에게서 떠나가셨다. 그후로 오래 편지로 근황을 주고받다가 오래전 소식이 끊겼다. 가끔 넘 보고싶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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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아프지만 병이 치유되길 바라지지 않는 환자를 모아둔 <기묘한 병 백과>

짧은 동화 같기도하고 긴 시 같기도 한 글이 이어져있다. 하나의 글엔 하나의 그림이 옆 페이지나 뒷 페이지에 이어 붙어있다. 그림은 글을 함축해 보여준다. 그림 안엔 글속의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은 모두 병을 앓는 환자다. 병명도 처음 듣는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앓는 병을 그림으로 묘사된다. 그림은 그로테스크하고 몽환적이다. 읽어나가다 보면 그림을 먼저 보게 된다. 그림속 주인공은 어떤 병을 앓고 있을까? 먼저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고 글을 읽었다. 작가의 상상과 마음 씀씀이를 따라갈 수 없었다. 글을 읽고 다시 그림을 보면 더 가슴 시리고 아련해져 온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환자가 병이 치유되길 바라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이 책의 이상한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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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고는 항상 똑똑한 사람이 친다 <지능의 함정>

똑똑한 사람, 배웠다는 사람과 그들이 속한 집단은 왜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하고 실수를 범하는가?

이런 결과를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능의 함정>은 크게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뤄져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인들의 실수나 바보같은 행동의 예시를 읽을 땐, 정말 이랬다고? 이걸 믿었다고? 같은 반응을 부른다.

그에 반해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수긍이 가긴 하는데 넘나 옳은 이야기 같아서 그렇지 하고 마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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