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펜은 있는데 왜 밑줄을 못 긋니?

책을 읽다가 어떤 단어나 문장에 꽂히면 기록해 두고 싶다.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옮겨 적으면 되겠지만 내겐 어려운 일이다.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사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인데 전자책은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책 읽는 맛이 없다.

오늘은 사진 찍기를 시도해 보았다.

찍은 사진엔 찍고자 했던 문장의 절반 이상이 안 담겼다.

당연한 결과다.

새 책이라 페이치를 펼쳐 놓은 데로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펼쳐 놓고 폰을 잡아서 찍으려 하면 저절로 책이 덮인다.

그 사이에 초점을 맞추고 촬영 버튼을 재빨리 눌러야 하는데 손이 안 따라준다.

양손을 못 쓰는 게 아쉬운 순간이다.

책 제목은 <지능의 함정>이다.

페이지 번호는 기억 안 나고 기억나는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지혜로운 이유는 내가 아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이제 상투어가 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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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 읽은 책  <지와 사랑>

오늘로 <지와 사랑>을 세 번째 완독했다. 그 세 번 모두 제목만 같은 다른 책이고 세 번을 읽은 나도 세 명의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이 소설을 처음 읽은 건 16살 때다. 보육원(재활병원)에서 지낼 때 한 선생님이 그만두시면서 선물로 주셨다. 성함을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떠오르지 않아 속상하다. 지금처럼 그때도 심심해서 읽었다. 다시 이 책을 읽고 그때를 돌아보니 16살의 나는 뭘 읽었나 싶다. 한가지 뚜렷한 기억은 골드문트가 기사네 집에 기거하면서 그의 두 딸과의 밀회 부분을 빨려들 듯 읽었다는 생각이. 선생님은 그 나이의 남자애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겠지.

의역된 제목 <지와 사랑>보다 원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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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에게 읽은 책 선물하기 <플란다스의 개>

이 책은 꿈돌이에게 가게 될 것 같다. 그러고 싶다.

내가 읽은 책을 소중한 사람이 같이 읽어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플란다스의 개>를 책으로 본 건 처음인데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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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건진 한 문장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예술이 예술가에게 주는 느낌은 수학의 증명만큼이나 절대적 진리다. 에드거 엘런 포의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중에서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외워지는 문장이 있다. 의미를 잘 몰라도 외워지는 문장이 있다. 단 한 번 스쳐 읽었는데 기억에 박제되는 문장이 있다. 이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책만이 하는 고유의 일이다. 책의 신이 있다면 그의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다. 나에게 한 문장과의 만남이란 이런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제목으로 선정된 단편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을 제외하곤 소설을 읽는 맛이 없었다. 19세기 작품이어서인지, 내용이 잘 와닿지가 않았다. 인문서나 교양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좀 어려웠다. 제목으로 선정된 작품은 그럭저럭 괜찮게 읽었다. 열기구를 타고 달에 갔다가 못 돌아온 사람의 편지를 외계인이 전해주면서 시작하는 스토리인데, 19세기 사람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이 귀여웠다. 찾아보니 작가가 미국 근대소설의 아버지라고 한다. 미국 근대소설이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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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그을 수 없는 문장들 <잊기 좋은 이름>

나중에 혹시 김애란 작가님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연필 하나를 선물해 드려야지.

책 읽을 때 연필로 밑줄 긎기를 좋아한다는 작가님에게 어떤 연필이 좋을까 생각해보니 4b 연필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문장은 두껍게, 어떤 문장은 얇게, 문장이 주는 감흥에 따라 채도와 두깨가 다른 선을 긋기에 가장 용이할 것 같은 4b 연필.

<잊기 좋은 이름>은 가느다란 선으로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어느 한 문장을 굵은 선으로 밑줄 긋기 시작하면, 다른 문장들이 서러워할 것 같아 공평하게 똑같은 두께의 선으로 그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문장들이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난 눈으로만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연필을 손에 잡은 지도 오래지만 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 행위가 고난도의 곡예가 돼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손글씨 쓰기를 중단한 게 넘 후회된다.

연필 한 자루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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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놓고 안 읽은 책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는 70대 시인의 시와 사랑에 빠진 20대 작가가 쓴 일기와 같은 에세이다.

끝까지 완독한 책만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왓차에 별점을 기록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 읽을 꺼리가 없거나 어쩌다 한 번씩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책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 아마 완독할 날은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책의 대부분은 사놓고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이다. 책의 입장에서 보면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있는 사람은 나태주 시인보다 김예원 작가를 알아간다. 만약 내가 좀더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나이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얼굴도 모르는 작가를 짝사랑하게 됐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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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70대 시인의 시와 사랑에 빠진 20대 작가가 쓴 일기와 같은 에세이다.

끝까지 완독한 책만 블로그에 서평을 올리고 왓차에 별점을 기록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예외로 하기로 했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 읽기보다 읽을 꺼리가 없거나 어쩌다 한 번씩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책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읽으면 아마 완독할 날은 오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 책의 대부분은 사놓고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이다. 책의 입장에서 보면 그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있는 사람은 나태주 시인보다 김예원 작가를 알아간다. 만약 내가 좀더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나이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얼굴도 모르는 작가를 짝사랑하게 됐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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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作 <생각 속에>


그쪽의 생각이

내쪽에 와 있고

이쪽의 생각이

그쪽에 가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입니다


나이를 넘어

거리를 넘어

사는 처지를 떠나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108쪽


<빨강 머리 앤>을 읽고 현타를 맞았다 

어릴 때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본 <빨강 머리 앤>의 원작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나서 코끝이 쌔했다. 내가 아이 하나를 키운 느낌이었다. 앤이 아니라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에 감정이입한 내가 넘 이상해서, 이 느낌은 무엇? 이러고 있다가 나에게 엔만한 아이 하나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나이가 됐다는 게 더 이상했다.

이 책의 등장인물 모두가 더없이 사랑스럽다. 배경이 되는 에이번리 마을과 초록 지붕 집도 말할나위 없이 사랑스럽다. 에이번리가 캐나다의 지명인 것은 이 책을 통해 알게됐는데 우리나라 어느 시골의 ~~리 지명인 줄 알았던 적이 있다.

내가 나이가 더 든다고 해도 매슈 아저씨와 마릴라 아주머니처럼 앤을 사랑스럽게 키우고 어른스럽고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진 않을 것 같다.

이 책의 아쉬운 점 하나는 챕터마다 달린 소제목이다. 소제목이 스포일러여서 앤보다 먼저 기뻐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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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저세상에서 추기로 하자


누워있거나 혹은 앉아있거나. 둘 뿐인 내 몸의 세계에서 춤은 다른 세계의 것이다.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춤의 쾌감은 아마도 저세상으로 가야만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유튜브나 TV로 보는 아이돌 그룹의 무대나 커버댄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동영상이 재생되는 3~4분 시간 동안의 나는 다른 세계에 가있다. 그래서 우울할 때는 무한반복으로 춤추는 사람들을 본다.

춤으로 유튜브를 점령한 리아킴의 자서전 <나의 까만 단발머리>를 읽었다. 자서전을 쓸만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가 감내한 힘듦이 너무도 커보였다.

안무가는, 팔과 다리를 음계 삼아 또다른 작곡을 하는 작곡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선지에 음표를 써내려가듯 동영상 타임라인 위에 고유의 몸동작을 만들어가는 안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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