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의 추억과 연애 흑역사


엄마, 헌금하게 만원만 주세요.

매주 일요일마다 엄마 돈으로 교회에 헌금을 낸다.

만원을 받으면 만원 다 헌금할 때도 있고 커피를 사먹고 남은 돈만 할 때도 있다.

내 수입이 없어진 후로 헌금을 한동안 하지 않았다가 다시 하기 시작한 지는 몇달 되지 않았다.

오늘은 헌금함에 돈을 넣다가 어릴 적 주일학교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 선생님은 예배 시작 전에, 아이들 모두에게 헌금할 돈을 나눠주셨다.

금액은 크지 않았다. 10원, 50원, 100원짜리 동전 하나씩을 받은 나외 아이들은 예배 시간 헌금힘이 돌 때 다시 그 돈을 헌금함에 넣었다. 나는 그 돈을 한번도 헌금함에 넣지 않았던 적은 없지만 몇몇 아이들에겐 작은 시험이었던 것 같다. 그 때 작은 차이가 미래를 결정했는 지도 모르겠다.

P.S. 교회에서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했던 고백이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사귀자고 한 것도 아니니 고백이랄 것도 아닌 대시가 거의 전부지만 매번 까였다. 


레벨이 없음 못살아


이번 연말과 연초는 별다른 일 없이도 행복하다. 레벨이가 신곡 <싸이코>로 컴백하고 음악방송에서 연거푸 1등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뮤뱅에서, 오늘은 음중에서 1등을 했다. 내일 방송할 인가에서 1등을 한다면 지상파 3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웬디야, 빨리 나아서 돌아와ㅠ


출고된 도서가 없습니다


책을 낸 뒤로 거의 매일 한 번씩 출고량을 확인한다.

지난달 초까진 이틀에 한 권 꼴로 팔리더니 그후론 한 권도 없다.

사실 이만큼 팔린 것도 기적인 것 같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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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도 2권 들어왔는데, 조금 충격이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책을 반품해 본 적이 없다. 책은 파손이 없는 한 반품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모든 작가가 자신이 책 사는 데 들인 돈만큼 딱 그만큼이라도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뒤늦은 2019 결산


나의 지난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해본다면 아래 문장이 아닌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꿈돌이로 시작해 꿈돌이로 끝났다.

서로가 간절히 원해도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이루지 못한다. 원하는 그것이 사랑이더라도.

나의 지난 한 해는 이것을 저항하다가 끝내 받아들인 해였다.

당신이 힘들면 포기해도 괜찮아요. 

난 이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새해 첫 실패


새해 읽기 시작한 첫 책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을 1/4 정도에서 끝까지 읽기를 포기했다.

주민센터 도서관 신착 서가에서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인데 내용이 어렵고 재미가 없다.

장르는 SF, 판타지 문학 비평이다. 다루는 작가와 작품이 C.S 루이스 빼고는 전부 내가 모르는 이름과 제목들이다.

내게 어려운 문학 비평서인 줄 알았다면 고르지 않았을 텐데. 제목만 보고 고르니 이런 책도 손에 잡게 된다.

그러나 신착 도서 서가에서 제목만 보고 고르는 나의 이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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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새해 결심


새해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가능한한 최소 1일 1글 원칙을 지키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가능한한'입니다. 가능하면 말이죠. 대단한 글은 아닐 겁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즉흥적이고 짤막한 글일 겁니다. 큰 동기는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블로그를 방치해 두면 이전의 블로그처럼 없애버릴 것 같은 생각에서입니다. 뚜웨뉘뚜웨뉘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반 고흐> 충동구매 뿜뿜


서점에 오면 예정에 없던 짓을 많이 한다. 그중에 위시리스트에 없는 책을 사는 충동구매는 가장 흔한 일이다. 그래픽 노블 반 고흐는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씨내21 최신호를 사러 서점에 들린 날 반 고흐는 운명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매대엔 딱 한 권만 남아 있었다.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언젠가 필름클럽에서 혜리 기자님이 소개한 고흐 책이 이 책인가 하는 기억이 떠오르자 얼른 집어들었다. 그런데 오늘 서점에 와보니 매대에 수권이 꽂혀있다. 내가 본 고흐 책 중에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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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love


2000년 3월에 발매된 조수미의 앨범 only love는 내 인생의 앨범 중 하나다. 그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서울로 왔다. 3개월 수습을 거치고 처음으로 연봉계약서라는 것을 받았고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원룸을 구해 엄마와 살았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객지에 온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 엄마와 거의 매주 근처의 다른 교회를 찾아 다녔다. 새교인이 와도 환영은커녕 눈길 한번 안 주는 교회도 있었다. 몇 교회를 거쳐 새신도로 맞아준 교회는 찾았다. 엄마는 새 교회에 적응해갔지만 ㄴ나는 아니었다. 청년부 모임에 나간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다가와주지 않았다. 어렵게 내가 먼저 한마디 건내면 단답형으로 답하거나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그들과 다른 종족인 것 같았다. 오늘 그때의 기분을 다시 느꼈다. 가까워지려고 하면 정색하며 멀어진다. Only love는 그때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산 앨범이다. 교보문고 hottrack 사이트에서 주문하고 기다리던 시간이 생각난다. 그리고 몇달 후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